조문희의 뒷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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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걱정하는 기자, 밥값 못하는 언론

moony1217 2019. 3. 26. 22:02

 

  사진부 교육이 한창이던 지난 13일, 서울 등촌동의 콜트콜텍 본사 앞에서 나는 짐작했다. '시끄럽고 치열한 취재가 벌어지지는 않겠구나.' 교육을 맡은 선배가 '해고노동자 한 명이 단식을 시작하는 자리'라고 귀띔한 이후 그 짐작은 확신으로 굳었다. 막상 도착한 현장에 예상보다 많은 기자가 와 있었음에도 그랬다.

  그리 예측한 이유가 있었다. 집단해고가 벌어진 2007년부터 시작됐으니, 콜트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은 이미 13년을 이어온 주제였다. 새로이 조명할 것 무엇이겠나. 그들이 약자라서? 대개 언론은 시의성을 앞세워 보도가치를 셈한다. 이날의 기자회견에 의미가 있었다면, 얼마 전 해고노동자들이 13년 만에 사장과 얼굴을 마주했다는 것, 그러나 막상 협상은 결렬됐다는 것, 이날의 회견은 협상 결렬 이후 처음으로 나온 노동자 측의 반응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반응의 형식이 단식이라는 일견 자극적인 행위로 이어졌다는 것 정도였으리라.

  그러니까, 일부 기자들이 조금 무심하게 현장을 지켜본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애당초 기자가 공감으로만 영위되는 직업도 아니지 않나. 정오의 기자회견을 취재해도 당장 30분 후에 다른 장소의 점심 식사를 살피러 가야 하는 게 이 업의 숙명이다. 사실관계를 따지고 그에 기초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기본 책무를 지켜가는 데만 해도 상당한 공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언론과 자주 마주하는 이들이 다짜고짜 질문하는, 일견 싸가지 없는 기자의 행태를 두고도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는 건 그런 대강의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지난 13일 서울 등촌동 콜트콜텍 본사 앞. 천막 안에 단식을 시작하는 노동자와 그의 동지들이 보인다. 직접 촬영.

 

  헌데 그런 핑계가 어디까지 통용될 수 있는 걸까. 모 매체의 카메라 기자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막 마치고 단식에 돌입하고자 자세를 바꾸는 노동자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조금만 빨리 자세를 취해달라.” 하지만 요구받은 이는 그리 재빠르지 못했다. 그가 ‘동지’라 부르는 몇몇이 주변에서 한숨을 쉬거나 울고 있었다. 그들과 때로 농담하고 때로 함께 한숨 짓느라 그는 분주했다. 카메라 기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정신 없는 노동자를 몰아 세우며 말을 이어갔다. “저, 이 다음에 또 일이 있습니다. 얼른 거기 가야 해요. 밥도 못 먹게 생겼어요.”

  기자와 취재원 사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선 따위는 좀체 없다고 본다. 애당초 저널리즘은 당대의 인간과 마주하는 업이다. 사람을 다루고 사람에게 건네는 관계의 연쇄를 어찌 칼로 무 자르듯 예단할 수 있겠나. 예컨대 저널리즘 교과서는 공적 가치가 있을 때에 한정해 개인의 사생활을 취재하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처럼 사생활을 캐다가 세상을 바꾸는 공적인 이슈가 튀어나오는 일도 세상에는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어떤가. 박 열사의 아버지가 흘린 눈물을 보도하지 않았던들 국민적 저항이 벌어질 만큼 독자 시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비극을 겪은 이에게 함부로 머리를 들이밀지 말란 경고는 숭고하지만, 막연히 순진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사안에 따라, 당대의 도덕관념에 따라 논리를 세울 뿐 저널리즘의 윤리에는 보편타당한 규칙이 없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더라. 다시 말하건대, 이날의 기자회견은 단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까지 부정하긴 어렵겠지만, “밥도 못 먹는다”는 말은 무언가. “죄송합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해서요” 정도의 말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기레기라는 말이 시작된 세월호 참사 때도 별다르지 않았다. '집단 구조'라는 희대의 오보가 일단 문제였지만, 현장에서 보인 일부 기자의 태도도 시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유족에게 “심정이 어떻습니까”라며 묻는 것까진 그렇다 쳐도, 꼭 숨 가쁘게 물어야 했던 건 아니지 않았나. 친구를 잃은 학생을 굳이 찾아서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야 했을까.

 

2015년 4월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은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현장을 찾은 대다수 기자는 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 쳐진 천막에까지 들어가며 인사와 위로를 건넸다. 바쁠 것이라 짐작됐던 이들 기자는, 추운 날씨에 농성과 단식을 시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옷깃을 여밀 줄 알았다. 그러나 이들 모두 단식 농성장 앞에서 자신의 끼니를 걱정한 카메라 기자와 같은 직함으로 불린다. 그리고 결국 싸잡아 욕을 먹게 될 것이다. ‘저널리즘 윤리를 지키지 못해서’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못해서.

  그 기자는 그때 무슨 메뉴를 먹었을까. 기레기는 엄청난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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