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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토크쇼J, 비평이 길이 되려면

moony1217 2019. 4. 2. 15:12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필수 교양서로 거론되는 책, <기자, 그 매력적인 이름을 갖다>(안수찬)는 첫 장부터 혼란스러운 질문으로 시작한다. 19332월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은퇴한 변호사 르네 랑슬랭의 아내와 딸, 가해자는 이들 집안의 두 하녀다. 하녀들은 파팽이란 성을 가진 자매로 사모를 엄마라고 부를 만큼 랑슬랭의 가족과 사이가 무척 좋았다. 그런데 랑슬랭이 잠시 출장을 떠나며 집을 비운 사이 이들은 사모와 주인집 딸을 모두 죽였다. 그냥 살해한 정도가 아니라, 눈알을 파서 거실 바닥에 놓아두기까지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사건 발생 초기 언론의 관심은 범죄의 잔혹성을 향했다. 취재 결과 두 하녀가 주인 모녀의 눈을 뽑아낸 시점이 피해자가 살아있을 때였다는 사실까지 나왔다. 하지만 보도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차츰 처음에는 알지 못한 또 다른 사실들이 언론의 취재망에 걸려들었다. 잔인함에 비추어 짐작한 바와 달리 파팽 자매는 주인 가족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살인의 이유를 묻는 말에는 그저 여주인들의 피부를 갖고 싶었다고 답했다. 눈길을 끈 것은 예상치 못한 사실들이었다. 언론은 이들 자매가 서로가 전생에 부부였다고 믿고 현생에서 동성애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아냈다. 취재 과정에서 사건 발생 당시 이들 자매가 생리중이었다는 정보도 나왔다. 게다가 이들은 부모로부터 어린 시절 학대받았다고 하는데, 아 그리고 또...

 

언론에 보도된 파팽자매 살인사건. 해당 사건은 이후 장 폴 사르트르와 같은 철학자, 장 주네를 비롯한 예술가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출처 : 쟈니7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ni0717/221425501720

 

  당대의 프랑스 언론은 고민에 빠졌다. 추론해 보자. 파팽 자매의 살인사건을 두고 누군가는 자매가 가진 하녀라는 지위에 주목할 수 있다. 어쩌면 피부로 표현되는 주인 모녀의 부유함이 자매의 질투를 불러냈을지도 모른다. 이와 달리 자매가 식인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성취하려 했다면 어떤가. 고대의 어떤 원시 부족과 유사한 일종의 무지, 혹은 비합리적인 믿음을 기자는 문제시할 수 있다. 근친 동성애라는 특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소수자성이 기사의 중심에 설 때 언론은 억압하는 사회를 문제 삼을 수도, 소수자성 자체를 도마 위에 올릴 수도 있다. 수다한 사실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해 보이는가.

 

의제 설정은 질문의 연속

 

  무엇을 앞에 세울지 내리는 결정은 끊임없는 질문이다. 교과서에는 무엇을 앞세울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기사 작성의 기초라고 적혀 있지만, 언론이 마주하는 현실은 교과서와 다르다. 하나의 사건에도 다양한 사실이 얽혀 있고 어떤 사실을 앞세우느냐에 따라 사안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언론사의 수준에서도 다르지 않다. 기자가 특정 사안에 얽힌 사실의 우선순위를 고민한다면 언론사는 그렇게 작성된 기사들을 취합하고 그들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배치할지 결정한다. 신문이나 방송은 이렇게 취재, 기사 작성, 데스킹,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언론이 수행하는 기능을 흔히 의제 설정이라고 부른다.

 

저널리즘의 교과서로 불리는,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저작. 언론 보도의 제작 관행은 물론, 저널리즘이 마주하는 현실적 딜레마까지 상세하게 서술해둔 책이다. 저자들은 책의 초반에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에 대한 것이다"라고 단언하면서도 뒤에 '진실'이란 제목의 장을 따로 만들어뒀다. 진실이란 개념이 간단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직접 촬영.

 

  문제는 의제의 지위가 그리 명료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사안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따지는 일은 가치 판단의 영역에 속한다. 물론 사실 자체는 객관적인 대상이다. 하지만 취재를 통해 모인 다양한 사실 가운데 무엇을 중심으로 삼아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것인지는 개별 기자나 데스크가 가진 경험, 가치관, 세계인식에서 비롯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절대적인 기준이란 찾기 어렵다. 제아무리 단정적인 어조를 가진 기사라 해도 그 단정의 기초에는 주관이 놓여있을 수밖에 없다.

  언론 비평을 자임하는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이하 J)36회 방송에서 버닝썬 사태를 다룬 것은 이 점에서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편찬한 <문학비평용어사전>에 따르면 문학에서 비평(批評)이라 함은 문학작품을 정의하고 그 가치를 분석하며 판단하는 것으로, “작품과 작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며, 그 기준은 과거의 문학작품과 전통에서 가져온다.” 이 정의를 빌리면 미디어 비평은 대개 기자 개인이나 개별 언론사가 내놓은 주관이 얼마나 합당한 기준에 따라 형성됐는지를 묻는 행위다. 언론 비평에 따란 세간의 인식도 그렇다. 사람들은 보도의 전제가 되는 기준이 합당하다면 좋은 보도요, 합당하지 않다면 나쁜 보도라고 말하는 게 비평의 역할이라고 본다. J가 화제 사안에 대해 개별 언론이 어떤 기준으로 보도했는지 따져보는 배경이다.

 

비평은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나

 

  하지만 주관은 예술가나 저널리스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평 역시 특정한 기준에 따라 산출되는 주관이다. 다시 <문학비평용어사전>을 보니,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비평의 기준은 시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비평의 준거틀 자체가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A라는 비평가가 낭만주의 문학 이론에 심취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특정 문학작품을 평가할 때 낭만주의라는 이념에 걸맞은 작품을 썼는지 살핀다. 그의 평가에 따라 어떤 작품은 칭송의 대상이 되고 어떤 작품은 폄하 당한다. 그런데, 낭만주의가 문학작품을 평가할 때 적절한 기준일까? 만약 낭만주의를 목표한 작품이라면, 그 목표에 부합하도록 서술하지 못했을 때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낭만주의의 해체가 작품의 의도였다면 어떤가. 적절하지 못한 비평은 외려 문학작품의 가치를 가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비평이 논변을 시작하기에 앞서, 작품을 분석하는 도구로 왜 하필 특정 기준을 선택했는지 제시하는 이유다.

 

KBS 저널리즘토크쇼J 36회에서 김빛이라 기자는 버닝썬 사태의 본질이 세 가지 쟁점에 결부된다고 말했다. POOQ 방송 화면 캡쳐.

 

  J는 다른 길을 갔다. 방송은 지상파 3사와 종편 4사의 버닝썬 관련 보도량을 그래프로 보여줬다. 그리고는 정준영이 경찰에 출석할 당시 각종 언론의 취재 경쟁을 화면에 담았다. 그렇게 SBS의 열띤 보도는 마치 선정적인 이슈를 적극적으로 소비한 나쁜 행태로 묘사되었다. 일견 그럴듯한 얘기다. 하지만 보도량이 많은 것 자체가 문제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보도량은 그저 특정 이슈에 개별 언론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다. 왜 그 보도에 집중했는지, 이유를 묻는 일은 그와 별개 아닐까.

  J도 나름대로 비평의 준거를 제시하고는 있다. 패널로 출연한 김빛이라 기자는 경찰-유흥업소의 유착 여부, 마약유통-성범죄 문제, 탈세 의혹이라는 세 가지 문제가 버닝썬 사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뒤이어 정준희 중앙대 교수는 SBS 보도가 자극적 정보를 과다하게 제공하고, 사회적 의제를 확산하는 데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의 기준에 따른다면 정 교수의 분석은 옳다. 하지만 김 기자가 제시한 기준이 과연 옳은가?

 

  버닝썬 사태에서 핵심은 무엇인가?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된 어떤 글은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관계라는 핵심이 승리나 정준영 같은 유명인을 둘러싼 이슈 때문에 부차시되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수백 수천 건 공유될 만큼 해당 게시물은 누리꾼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이와 다른 의견도 있다. 누군가는 유명 연예인을 상대로 한 정준영의 몰카 범죄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본다. 몰카를 찍는 일부 남성과 이를 별생각 없이 공유하는 단톡방 문화가 성적 대상화가 만연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연예인 비판으로 시작했을지언정, SBS의 보도는 사회 전체의 문화를 바꾸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J의 눈에는 이것이 별 가치 없는 보도처럼 여겨지는가.

 

제대로 된 비평을 꿈꾼다면

 

  연예인이 그렇게 대단한가요?”라고 J의 패널 장부승 교수는 물었다. 일견 맞는 말이다. 연예인의 경찰 출두 장면에 취재진이 몰리는 행태에 무작정 면죄부를 주긴 어렵다. 대체로 기자들은 연예인 앞에 무작정 마이크를 들이민다. 연예인은 이슈가 되기 쉬운 대상이고, 팔리는 소재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지도 모른다. 누군가 전부라고 주장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일부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토크쇼J 36회 방송에서 장부승 교수는 "연예계가 그렇게 중요한가요?"라고 물었다. 기자들이 정말 '연예인'이라서 승리나 정준영을 좇았다고 생각하는가? 내 답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버닝썬 불법, 유착'이 몸통이고 '정준영 동영상'은 곁가지라고 누가, 무슨 기준으로 정했나? POOQ 방송화면 캡쳐.

 

  J의 비평행위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건대, 저널리즘토크쇼JSBS나 채널A의 보도를 검토한 행위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같은 사안을 보고도 어떤 측면을 앞세워 보도해야 하는지, 무엇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보도인지는 기자 개인마다, 나아가 뉴스룸마다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렇게 자기 판단에 입각해 다른 기자의, 타사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논평하는 건 그들의 권리이자, 건강한 공론장을 만드는 하나의 기둥이다.

  문제는 자신의 비평적 관점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그들의 태도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의 학생회나 교지 제작 활동에서도, 내부에서 경합하는 의견 가운데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뉴스 제작 과정이나 사회의 담론 구성 과정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야 둘 중 하나의 시각을 앞세우게 될지언정,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토론이 필수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자기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는 일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J이것이 중요하다며 가치를 세워놓고는, 그런 기준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비판한 SBS가 어떤 관점에서 그런 보도를 했는가에 대해선 면밀히 살펴보지 않았다. 자신의 옳음과 남의 그름을 그 자체로 전제하는 태도에 어떤 토론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일까. 자기만이 옳다는 자만과 상대에 대한 비난, 그리고 언론 혐오에 편승하는 태도뿐, 그 이상의 것을 J는 보여주지 않았다.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고발하는 프로그램.” 네이버 방송 프로그램 정보에 공개된 저널리즘토크쇼J의 기획 의도다. ‘기레기란 말이 상징하듯 지금의 한국 언론은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J가 자신의 의도를 잘 실현해서, 언론에 올바른 길을 제시해줬으면 한다. 그러려면 먼저, 이정표를 잘 드러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J에 바치는 헌사, ‘비평의 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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